가해자 '제이미'와 피해자 '케이티'의 구도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별 갈등과 여성 혐오의 민낯을 마주한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면 전단지라도 만들어 뿌리고 싶을 정도로 추천하고 싶었던 작품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다.
고작 4편짜리지만, 다 보고 나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작품을 보고 느낀 첫 감상은 두려움이었다.
13살 동급생을 살해한 가해자 '제이미'의 논리는 낯설지 않다.
이 글은 '제이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살아남으려는 '케이티'와 분노하는 '제이미'의 사회가 바로 우리의 현실은 아닌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이다. 😊
'제이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가해자 '제이미'의 논리는 이미 너무 많이 들어본 주변인의 말이고, 뉴스에서 본 사건의 전말이다.
'왜 안 만나주냐'며 전 애인을 살해하는 수많은 사건들처럼 말이다.
특히 3화의 상담가 에피소드는 압권이었다.
남자 경찰과 변호사 앞에서는 순종적이던 제이미는 여성 상담사 앞에서 놀랍도록 자유롭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는 상담사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폭발한다.
이 장면은 성인 대 미성년자 관계임에도 자신을 권력의 우위에 놓는 제이미의 모습을, 그리고 그 폭발이 얼마나 낯익은지를 보여주며 마음을 내려앉게 했다.
살아남으려는 케이티와 분노하는 제이미의 사회 📊
꽤 많은 한국 시청자들이 피해자인 케이티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걸 안다.
비슷한 사건에서 비난의 화살이 대부분 여성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티에게는 잘못이 없다.
오히려 나는 피해자가 케이티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라면 케이티는 자살했을 것이다.
우리의 사건은 대부분 피해자가 스스로를 던지며 끝이 난다.
지금의 사회는, 전 세계는 물론 한국 사회는 더더욱, 제이미와 케이티의 사회다.
살아남으려는 케이티와 분노하는 제이미, 그 둘 외에는 아무도 없다.
이 영화가 유독 낯설지 않았던 이유
폭풍 같은 성별 갈등의 사회에서 일찌감치 빨간 약을 먹은 30대 여성으로서 이 작품이 던지는 두려움은 생생했다.
우리의 세상은 정도의 차이일 뿐 '제이미'로 가득하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에 어떤 인간들이 걸어 들어오고 있는지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사건 이후 제이미의 아버지가 생경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표정이 마치 내 얼굴 같았다.
세상이 어디까지 간 거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하는 표정 말이다.
.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평등은 요원한데 혐오는 더욱 짙어지는 이 세상에서, 제이미를 살리고 케이티를 죽이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부디 더 많은 여성들이 한국에서처럼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 케이티처럼 죽임을 당하지도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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