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 후기, 저주에 감춰진 진짜 얼굴 (Howl's Moving Castle)

 

하울의 움직이는 성 후기, 저주에 감춰진 진짜 얼굴 (Howl's Moving Castle) 스무 해가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불안과 아름다움의 허상을 관통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걸작. 전쟁의 공포와 자기혐오를 넘어 진정한 사랑과 연대를 찾아가는 소피와 하울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20년이 지났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전단지라도 만들어 뿌리고 싶을 정도로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 무의미한 전쟁을 멈추지 않는지,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허상에 갇힌 우리는 어떻게 늙어갈 용기를 얻을 수 있는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려는 작은 연대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우화다. 소피의 저주와 하울의 공포는, 결국 우리 모두가 싸우고 있는 내면의 전쟁과 다르지 않다. 😊

무의미한 전쟁 속, '나'를 지키려는 작은 연대 🤔

영화의 배경은 끊임없이 폭격이 쏟아지는 전쟁의 시대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무엇을 위한 파괴인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이웃 나라의 왕자가 실종되었다는 막연한 이유뿐.
국가라는 거대한 광기에 휩쓸려 기꺼이 괴물이 되기를 자처하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하울은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그의 저항은 영웅적이라기보다, 자신의 아름다움과 자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소피와 마르클, 카루시파가 함께하는 '움직이는 성'은 국가로부터 도망친 이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거대한 폭력에 맞서는 가장 작은 단위의 연대다.


'아름다움'이라는 허상과 늙어버릴 용기 ⚙️

하울은 "아름답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어"라고 말하며 극도의 나르시시즘을 보인다.
반면 소피는 황야의 마녀에 의해 90세 노파가 되는 저주에 걸린다.
흥미로운 건,
젊음을 찬미하는 세상의 시선과 달리 소피는 늙은 자신의 모습에서 오히려 자유와 용기를 얻는다는 점이다.
더 이상 외모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진 그녀는 솔직하고, 당당하며, 거침없다.
영화는 묻는다. 과연 무엇이 진짜 저주인가. 외면의 늙음인가, 아니면 아름다움이라는 허상에 갇혀버린 내면인가.
결국 하울을 구원하는 것은 그의 화려한 외모가 아닌, 모든 것을 내어줄 각오가 된 소피의 늙고 주름진 사랑이었다.


이 영화가 유독 낯설지 않았던 이유

소피가 노파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 느꼈을 감정의 결이 낯설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 시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위축되는지. [cite_start]여성이라면 그 상황이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안다.
소피가 늙음 속에서 오히려 단단한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은, 외모와 젊음이라는 코르셋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얻게 되는 자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 이런 분에게 추천해요: 화려한 판타지 속 깊은 성찰을 원하는 분
🤔 이런 점은 아쉬워요: 서사의 개연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 함께 보면 좋은 작품: 모노노케 히메
🎧 몰입도를 높이는 TIP: 영화의 OST, 특히 '인생의 회전목마'를 들으며 영화의 여운을 느껴보세요.

결국 이 영화는 자기혐오라는 저주를 이겨내고 서로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때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속 폭격이 멈추고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우리 현실의 무의미한 혐오와 갈등이 멈추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더 이상 영화와 같은 비극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N번째 다시 정주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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